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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슬픔이 주는 기쁨』

책 리뷰를 위해 제목을 적었지만 어째 오늘은 일기가 될 것 같다.

1.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 그 강한 믿음은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아마 그런 상황은 기쁨이 주는 슬픔이겠지. 요즘은 뭐랄까.. 부쩍 주눅이 든 날들이 연속된다. 내가 나를 의심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아졌다.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탓에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중압감, 책임감. 칭찬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29살은 원래 이런 기분일까.

2.

『슬픔이 주는 기쁨』을 읽으며 출근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눈이 반쯤 감기는 오후, 동료가 자리로 와 책상을 물끄러미 보더니 물었다. '『슬픔이 주는 기쁨』은 뭐야? 슬픔이 어떻게 기쁠 수 있어?' 나는 대답했다. '슬픔은 깨달음을 주니까요. 그게 즐거움이겠죠.' 노잼이란다. 나도 알고 있다..

3.

퇴근길, 슬픔이 주는 기쁨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하지만 기쁨이 주는 슬픔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잔잔한 삶을 지켜야 한다는 위협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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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벽에 걸어야 할 것은 쓸쓸한 도로변 휴게소 그림인지도 모른다. p.10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p.19


우리의 눈에 감추어져 있었다 뿐이지, 사실 우리의 삶은 저렇게 작았다는 것. p.33

이 옷 괜찮아요? 괜찮아야 돼요. 여섯 번씩이나 옷을 바꿔 입어볼 수 없는 것 아니에요? p.39

진정한 연인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안 선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랑에 걸려 넘어지고, 욕망에는 명료한 표현이 결여되어 있다. p.45

어떻게 하면 가망 없을 정도로 밋밋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소외시키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p.50

클로이의 생각으로 판단되는 것에 나를 맞추어 나갈 뿐이었다. 그녀가 강인한 남자를 좋아하면 나는 강인해졌다. 그녀가 윈드서핑을 좋아하면 나는 윈드서핑 선수가 되었다. 그녀가 체스를 싫어하면 나도 체스를 싫어했다. 그녀가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추측은 꼭 끼는 양복에 비유할 수 있고, 나의 진짜 자아는 뚱뚱한 남자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뚱뚱한 남자가 자신에게 너무 작은 양복을 입으려고 기를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나는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p.52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 p.56

우리가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묻는 핵심적인 질문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느냐이다. p.67

사람은 아주 하찮은 것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뭐 사랑이라는 말이 좀 그렇다면, 기질에 따라서는 반한 상태, 병, 착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향하여 뜨겁게 고조된 그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p.92 

부르주아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옷을 입고, 너무 천박하지도 않고 또 너무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자식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방탕한 상태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각적 기쁨들을 인정한다. p.107

많은 글쓰기가 그런 식이다. 맞춤법은 시간이 가면 정확해지지만,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단어들을 배열하는 데는 꽤 고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p.113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역설적으로 나 혼자 파악하려고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