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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완『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안 생기는 열정을 억지로 만드는 건 스트레스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언젠가 열정은 저절로 생긴다. 지금 하는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 열정을 쏟으면 된다. p.33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열심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은 기분이었다. p.68

노동의 가치를 깍아내리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노동이 진짜 가치 있고 신성하다면 값을 잘 쳐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될 때까지 일해서 우리가 받는 액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것이 신성한 노동의 가치란 말인가. p.183


올해 들어 '내 성격 정말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냥 웃으면서 넘기고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쥐 잡듯이 잡고 바꾸려 들고 원칙을 따지고 규칙을 세우고, 어차피 그런 거 잡아봤자 너무 팍팍한 기준에 나 조차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자꾸 정리하려 들고 더 잘하려 들고 게으르고 완벽하지 못한 것에 답답해하고 말이지.

최근 이직을 하면서 그 강박은 더 심해졌다. 경험이 경력이 아닌데, 상황을 경험에 의존하여 분석하고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 삶의 모든 상황이 내 것이 아닌데, 별것도 아닌 일에 열을 내다보니 정말 중요한 건 소홀한 채. 나를 돌보고 신경 쓸 시간이 줄어들었다. 정확한 목적어도 없이 말로는 '해야 해', '할 수 있어'를 수십 번 되뇌면서도 마음속 깊이 '지친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떠나질 않았다.

지쳐버렸다. 이제 막 30이 눈 앞인데, 이제 시작인데, 이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는데, 여유도 생기고,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멋진 삶을 꿈꿨는데, 잘 풀린다고 믿었는데 왜.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 무엇도 잘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나는 누군가한테 기대기에는 너무 얍삽한 성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없이 기대고만 싶었다. 친분이 두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단톡방에 쏟아냈다. 앞뒤도 정리되지 않은 사건들을 다른 포지션은 이해도 못할 일들을 그냥 와르르 쏟아냈다.

'내가 왜 그랬지' 반성하는 순간 단톡방에 있는 누군가가 책 선물을 보내줬다.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는 브런치에 가득 쌓여있을 듯한 그런 산문집. 근데, 진중하지만 쉬웠다. 더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힘을 빼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시간이 깎아내린 냉소적인 고민이 그리고 결과가 위로가 되었다. 나도 지금 보다 조금만 가볍게 살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