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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키스 앤 텔>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말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실제로는 말을 덜하게 된다는 역설. p.329

알랭 드 보통의 사랑 4부작을 모두 읽었다. 평소 작가를 보며 책을 읽는 타입이 아니지만 알랭 드 보통은 예외다. 그가 쓴 책은 펼친 3일 이내 모두 끝내곤 했는데 <키스 앤 텔>은 아니었다. 바쁜 시기에 펼쳐서 집중을 못했다기엔 안 바빴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사랑 4부작 중 가장 흥미롭지 못했다. 한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고, 심리적인 묘사가 너무 심하기도 하고 자극적인 부분이 별로 없기도 하고.. 여러모로.. 어쨌든 '닥터 러브'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책임은 분명하다. 책이 환자고 알랭 드 보통이 의사라면 이 책은 과도하다 싶은 정밀 검진 기록이다.  

'끝도 시작도 뻔한 그 일을 내가 왜 해 하다가 우린 만났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건 우리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였어' 좋아하는 노래의 일부분이다. <키스 앤 텔>을 읽는 내내 이 노래가 생각났다. 비슷한 느낌이라..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선 사소한 모든 것까지 궁금하다. 하루종일 대화하고 싶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꽤나 쌓인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몇시간 아니.. 하루 아니.. 일주일 쯤만 연락 안하고 싶다.' 이게 사랑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키스 앤 텔>은 그 고민을 심화 시켜준 책이다. 하지만 고민에 대한 답변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대신 해주리라. 그러니 보통의 사랑 4부작은 쓰여진 연도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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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들은 앤디 워홀이 예언했던 신화적인 시대, 모든 사람이 15분 동안 유명해지는[즉, 전기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 p.16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뻔뻔스럽게도 그들이 이런저런 사람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아는 것이 없다고 해서 판단을 유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p.51

돈이 없어서 좋은 것은 아마 돈이 좀 생기면 모든 게 얼마나 좋아질까 상상할 수 있는 점인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부자가 되면 탓할 게 자기밖에 안 남을 것 아니겠어요. p.63

뭘 원하면 그냥 그걸 얘기하면 돼. p.104

솔직해지지 못했던 것은 혼자 남게 되는 것에 대한 수치스러운 공포 때문이었다. p.178

극과 극을 오르내렸지. 어느 때는 너무 좋아서 결혼과 자식들 생각을 하다가, 곧이어 완전히 엉망이 되곤 했어. p.182

하지 못하는 키스가 하는 키스보다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p.190

즉 물질적으로 말해서 런던은 하나밖에 없지만, 동시에 런던 사람만큼이나 많은 런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204

남들의 행동을 해석하고, 무엇이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면을 설명할 수 있을지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심리학자다. p.245

이사벨은 어떤 신앙도 없었지만 종교적인 인과응보는 믿었다. 자신에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응보이며, 지금 고생을 하는 것은 자신의 운이 좋은 쪽으로 바뀔 때를 대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p.293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가 '사느냐 죽느냐'하고 써나갔을 때 어떤 자세로 앉아 있었는지 안다면. p.298

여행을 좋아한다고? 이것이 도대체 자신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란 것일까? 좋은 목적지에 가는 것이고, 비행기가 제 시간에 착륙하고, 짐을 잃어버리지 않고, 환율이 유리하다면 여행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적의 영토를 억지로 가로질러 행군해야 하고, 도착하자마자 총파업이 벌어지고, 항구 레스토랑에서 먹은 물 마리니에르 때문에 식중독에 걸리고, 혼잡한 중동 야외시장의 양탄자 노점에서 신용카드를 도난당한다면 누가 여행을 싫어하지 않을까? p.312

너라면 애인 구함 광고를 어떻게 쓸 것 같아?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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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의 키스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